a Korean's daily life

a Korean's daily life

대한민국 명문가 장하진 전 장관 가계도.

명문가라는게 무엇일까? 돈많은 집안? 학자집안? 정치인집안?
정치명문가, 학자명문가라는 말은 얼핏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될 것 같기도 하지만
재벌명문가라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고 어울리지도 않는 것 같다.
아마도 정치명문가나 학자명문가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 것들을 일신상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사회를 위해 헌신한다는 의미가 재벌의 그 것과는 다르리라.

대한민국 명문가에 감사하다.

대한민국에는 친일파의 후예로 부를 누리는 후손들도 많지만 이렇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지금의 대한민국 발전에 일조를 하는 후손들도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된다.
이런 명문가를 보면 이 분들은 가정교육을 어떻게 할까라는 호기심이 인다. 분명 억압적이지 않고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을까.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하는지 반성을 하면서도 쉽지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참여정부 시절 초대 여성가족부 장관이자 한국의 진보적 여성학자인 장하진 전 장관의 가계도이다.
가히 명문가문이라 부르지 아니할 수 없다.


장하준 교수 가문

1세대 : 4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


- 구한 말 호남 최고의 대지주 가문이었으나 독립군 활동으로 쇄락


- 광주학생 항일운동에 참여했다가 젊은 나이에 타계한 셋째 제외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


- 광복 후엔 삼남 장홍렴 의원이 토지개혁법 발의해 집안 땅 농민에게 무상으로 공급


- 백범 김구의 측근,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군, 광복 이후 반민특위 검사, 제헌 국회의원 등으로 활약





2세대 : 4형제 모두 6.25 전쟁 참전 및 반독재 투쟁


- 아버지의 명에 의해 4 형제 모두 참전


- 장재식은 광주서중 4학년 16세 나이에 참전해 낙동강 전투 참여, 이후 산자부 장관 및 3선 의원


- 장재식은 서울대 법대에 조기 입학. 학생운동으로 구속 후 몇 개월 만에 치른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


- 서울대 공대 재학 중이던 장충식은 압록강 전투에서 중공군의 기관총에 맞아 상이군인


- 역시 서울대 공대 재학 중이던 장영식(전 한전 사장, 현 뉴욕대 교수) 역시 총 맞아 상이용사







3세대 : 학계의 거목으로 포진


- 장하준은 영국 캠브리지대학 졸업 후 27세의 나이로 교수 임용. 레온티에프 상 최연소 수상, 뮈르달상 수상


- 장하석은 칼텍 졸업 후 현재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라카토스 상 최연소 수상, 이반 슬레이드 상 수상


- 장하성은 장하성 펀드 및 소액주주운동으로 유명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 장하진은 충남대 교수 및 전직 여성부 장관


- 장하종은 조선대 의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형제들 역시 대부분 의사


- 이 외 미국 보잉 이사 및 변호사, 교수, 사업가 등


나는 어떤 모습일까?

이 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아이의 교육도 교육이지만 나의 모습, 내가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떠 오른다. 아이들은 아빠의 등을 보고 큰다는데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너무 부족한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아이들이 커가며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체벌을 가하기도 했고 대화를 하기 보다는
강요를 하고 그들의 말을 귀기울이지 않았으니 대화가 점점 끊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아빠와
대화를 잘 하지 않는 그런 가정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지금부터 그들의 말을 들어야겠다.
말을 하기 보다는 질문을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한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어느덧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다. 아빠로서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