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Korean's dail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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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야기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

전남화순군춘양면석정리
로드뷰로 본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석정리

고향은 돌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데, 다로드도 글쎄, 돌아갈 수 있는 곳인지 모르겠다. 내가 꼬마일 때

나를 이뻐해 주셨던 친인척들은 이제 점점 나이들 들어가시고 더 이상 만날 수 있는 분이 줄어든다.

인사를 나누는 내 또래의 친인척들은 거의 없다는 것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한 아쉬움중 하나다.

어렴풋하게나마 고향의 흔적이 있는 그 곳이다. 고향이야기를 할 때면 마음 한 편에서 아리다.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태어나기만 했지 기억도 없고 그나마 고향느낌의 유년의 기억이 있는 곳이

전남 화순이다. 커가면서 누가 고향어디냐고 물으면 태어난 곳을 말하자니 기억이 없고 해서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그냥 고향을 물으면 “전남 화순입니다” 그런다. 본적도 화순이니 말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돌정2길 10의5

초등학교만 서울, 성남, 그리고 광주에서 다녔으니

ㅎㅎ 복잡함을 단순화시키는 것이 어릴때부터 습관화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몇 일전에 고향 당숙께서 전화를 하셨다.

아주 위트 넘치고 인정이 넘쳐서 친인척간에 칭찬을 많이 받는 분이다.

으례의 인사말이 오고 간 뒤에 당숙답지 않게 말이 부자연스럽다.

“일은 잘 되냐?”

“뭐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일손은 안 딸리냐?”

“하, 안 딸리죠.”

제대한 지 좀 된 아들 이야기를 한다. 일을 배워볼 수 없냐고 말이다.

제대하고 나면 앞이 깝깞한 경우가 있지.

어렵지 않은 일이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얼마전에 채용한 인원이 있어서

사실 채용자체는 할 수 없는 입장이다. 한 3개월정도 수습사원식으로

알려줄 수는 있지만 말이다. 어렵게 말씀하셨을텐데 찾아뵙고 말씀을 드려야 겠다고 했다.

평소 고민이 있을 때 조언을 듣는 작은 아버님께 당숙과의 사정을 말씀 드렸더니

반가운 듯이 말씀하신다. 화순에 내려가신단다.

할머니께서 고령이신지라 요즘 상당히 편찮으시다.

언제 있을지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 고향에 모실 자리를 찾아보러 내려가는

마음도 편치는 않으시리라. 조카에게 같이 가자는 말을 못하셨는데 말이다.

동행을 하거나 시골에 가면 항렬이나 연배로나 가장 어린 내가 쫄병신세다.

집안이 아직까지는 장유유서가 있는지라 어쩌면 내가 마지막일 듯 하다. 같이 가면 고생이다. -.-;;

사회에서는 나이도 그렇고 모임을 가도 나름 포지션이 있는데 집 안에서는 쫄인거다.

장손인 할아버지때부터 일찍 후손을 보는 바람에 나와 같은 항렬은 심지어 초등학생도 있다.

동생인거다. 삼촌,고모가 나보다 몇 살이든 어린 경우도 다반사인 친인척 모임인지라

어릴때는 참 좀 거시기 하더라. 수요일 일찍 퇴근을 하고 차를 달려 작은 아버님과 삼촌이 있는

서초동으로 달렸다. 나는 쫄이다. 오랜 공직생활을 하고 은퇴하신 데다가 나와도 세대차이가 있지만

대화하는데 불편함은 없다. 어쩌면 어릴 때부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라 만나면 반가움이 더한 분이고

그 연령대의 분들에 비해 마인드가 열려있는 분이라 그런지도모르겠다.

고속도로 입구부터 막힌다.

고속도로 정체 행렬.

연휴가 쭈욱 되니여행지를 찾아 나서는 행렬일까.

한 시간 쯤 걸린 거 같다. 서울을 빠져나가는데 말이다.

춘양에서 나고 자란 작은아버님과는 달리 나는 춘양에서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의 기간을 살았기에

친인척들도 잘 모른다. 더구나 어릴 적 나를 기억하셨을 많은 분들이 유명을 달리하셨기에

사실 내려가도 달리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는 그런 상황이다.

어쩜 어른들과 함께 가는 게 뭐 편한지도 모르겠다. 그 덕에 당숙과도 친해졌으니 말이다.

춘양에 가면 반겨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작은아버님의 연배에도 불구하고 장모님이 살아계신다.

올 해 90세 되신다고 한다. 할머니와 갑이시다.

내 입장에서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달라지는 것들이 많은데 갑인

어머님이나 장모님과 함께 하는 작은 아버님이 느끼는 감회는 말해 무엇할까.

몇 번 함깨 갈 때마다 장모님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면 배포가 크시고 총명하셨던 것 같다.

이젠 깜박 깜박하는 것도 많아지고 정리정돈에 집착한다고 안타까워 하신다.

그 분만의 문제는 아닐 거다.

누가 자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있을까.

참 평화로운 정경이다.

작은 아버님과 막내삼촌.

주변에 능주 삼충각이 있다.

능주 삼층각.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a225cb93-5e7a-4f86-ba9e-ebd279b8e39b

드디어 춘양면 석정리다.

청도김씨가 참 많이 사는 곳이다.

돌정리
돌정리

청도김씨 능주 화엄공파의 제각이다.

청도김씨 영헌공파 제각

사실 저 안에 들어가 본 기억이 없다. 그런데 증조할아버지때 저기서 살았다고 한다. 내가 아주 어릴 때의 일이다.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시골이다.

제각 옆에는 증조할아버지의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증조할아버지 공적비.

담장 너머로 찍어본 제각이다. 내가 여기서 살았었나?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하긴 학교가기 전 5,6살 때의 일일테니,

어릴 때 제각에서 잠깐 살았었다.

저 위로 화순으로 이주하신 청도김씨의 중시조이신 김치산님의 비가 서 있다.

중시조 김치산님의 비.

작은 아버님이 고향친구의 연락을 받고 그 분이 산 농장?에서 식사를 하기로 해서 올라온 산등성이다.

나도 고향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향에 친구가 있다면 참 반가울 것 같다. 어릴적 동네를 뛰놀며 하천을 건너며 수박서리를 하던 친구가 있는 그 곳, 고향하면 떠오르는 생각이기는 한데 뭐 죄다 도시로 올라가니 그 것도 어쩜 지나간 페이지 일 지 모르겠다.

평화로운 밤이다.

시골은 저녁이 일찍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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